독서의 계절을 운운했던 지난 번의 포스팅의 온기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다시금 책에 대한 잡설을 끄적인다.이번엔 유.시.민.이다. 차기 대권의 가능성을 일정부분 가지고 있는 여권의 대항마로써 참여정부시절 노무현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원으로써 때론 온화하고 때론 격정적인 제스쳐로 "올바른 말도 싸가지 없게 한다"는 비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 그가 유시민이다. 늘 바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풍경이 그는 늘 공부하는 사람이란 이미지이다. 오래전 "거꾸로 쓴 세계사"부터 최근의 "청춘이 독서"까지 그가 내비친 지식의 탐구방향은 항상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노무현대통령 서거의 앞과 뒤에 세상에 나온 "후불제 민주주의"와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도 그가 얼마나 인간에 대한 본질적 사랑이 따스함으로 가득차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가슴이 따스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무릇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기성 지식인들이 인간 노무현을 업신여길때 대한민국 최고학부를 나오고 독일유학까지 갔다온 그는 학벌로써 인간의 됨됨이를 저울질하는 대한민국의 오만한 지식인들의 수준을 매몰찬 언어로 성토했다. 탄핵정국때에는 조직폭력배의 "경우"조차 없는 한나라당 똘마니들에게 사지가 들린채 끌려나가면서 그가 오열하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노무현대통령서거에 누구보다도 서럽게 우는 그의 모습도 여전히 내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게 한다. 그는 시종일관 지식인의 모습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사고와 행동으로써 그 고민에 온몸을 던져 증명해보는 몇 안되는 실천가이다. 리영희 선생께서 말씀하신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진실,진리,끝없는 성찰,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와 더불어 산다고 말씀하신 대목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청춘의 독서 48페이지> 그런 선생의 칼날같은 논리에 "부끄럽다.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사상의 은사'앞에 서는 것이 정녕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라고 독백하는 그에게서 최소한 난 솔직함을 느낄 수 있다.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이란 부제가 붙은 "청춘의 독서는 가끔 등장하는 깔끔한 일러스트만큼 깔끔한 내용으로 스며든다.
가끔 학창시절에 일방적인 설문조사의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거친 재생지에 등사기로 밀어 잉크냄새가 자욱한 다양한 질문들속엔 언제나 "취미"와 "특기" 가 있었다. 아둔한 머리가 그 생경한 단어를 입안에 집어넣고 오물거리다 보면 취미와 특기는 별차이없는 같은 의미의 다름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줄곧 "취미"란에는 독서라고 기입하고,"특기"란에는 "운동"이라고 써넣었던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는 실제로 독서와 운동 어느것도 뿌듯하게 해내지 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쨌거나 게으른 나의 지난날 독서습관을 지금에서 뒤적거려 봐야 '죽은 아이 고추 만지기'밖에 더 되겠는가? 그저 읽지 못한 무수한 책들과 읽어야 할 까마득한 책사이 어디쯤엔가 내가 우두커니 서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시민씨의 청춘의 독서를 대하는 마음은 그 까마득한 책의 계단을 사뿐히 밟고 올라선 다소 두근거리는 기분인것만은 사실이다. 책날개에는 이런 말이 씌여져 있다
"유시민은 이 책들을 혼자 읽지 않았다.19세기 러시아 청년들이 읽었고,20세기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이 읽었으며,미래에도 누군가 계속해서 읽을 아름답고 위험하며 위대한 책들이다.세계인을 울린 얇은 소설 한 권,한때 세상을 전복시켰던 한 장의 선언문을 통해,그는 "생각의 역사"를 보여주고, 우리 몸에 자리 잡은 지성의 유전자를 발견하게 한다."